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매직 존슨 (문단 편집) === 성장기 === 어빈 매직 존슨은 1959년 아버지 어빈 존슨 시니어와 어머니 크리스틴 슬하의 6남매 중 하나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매직 존슨은 농구에 꽂혀 하루종일 연습을 했는데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렸을 때 모두 농구를 했기에 이미 농구 집안에서 태어난 자녀였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그 당시 농구로 유명했던 (게다가 흑인들 위주였던) 섹스톤 고등학교로 가고 싶어했지만 사정상 백인이 많은 에버렛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 당시 아직도 인종차별이 심할때라 처음에 매직도 섹스톤 학교에 가지 못한걸 후회했으나 인종차별을 견뎌내면서 농구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에게 패스조차 안했던 그의 팀원들이었으나 결국 확고한 철학을 지닌 조지 폭스 감독의 개입과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농구실력은 결국 그가 에버렛 고등학교에서도 주전으로 뛸 수 있게 해주었다. 또한 매직의 유한 성격도 인정받아 백인동료들도 그를 인정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10학년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경기에서 36득점 18리바운드 16어시스트라는 흠좀무한 성적[* 흠좀무라고는 하지만, 보통 NBA의 레전드들은 대부분 고교시절 이 정도의 성적을 보였다. 이 정도 성적을 가진 고교 선수가 아니라면, 스카우터들이 처다보지도 않는다. 당장 고등학교 졸업 당시 전국구 유망주긴 했지만 톱까진 아니고, 자기가 원하던 노스캐롤라이나 스테잇으로부터 스카웃받지도 못한 [[마이클 조던]]의 4학년 스탯이 26.8점 11.6리바운드 10.1어시스트였다. [[카림 압둘자바]]는 무려 71연승에 고교 시절 내내 79승 2패를 기록했다. 다만 매직의 저 성적은 레전드들 중에서도 탁월한 축에 속하는 것은 맞다.]을 기록했고 평생 따라붙는 "매직" 이라는 칭호를 한 기자가 붙여주었다. 싱스테이트저널의 프래드 스타브리라는 기자가 고등학교 당시 그의 플레이를 보고 '마술같다'는 의미에서 별명을 '''"매직"'''이라고 붙여줬는데, 이때부터 이름대신 모두 매직이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이름보다 별명이 더 유명해졌다. 오히려 매직이 본명인 줄 아는 사람이 대다수([[베이브 루스]]의 경우와 같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미들네임 식으로 Earvin 'Magic' Johnson으로 불리기도 한다.[* 매직이 은퇴한 이후인 1993년에 1라운드 23번으로 [[시애틀 슈퍼소닉스]] 지명되어 데뷔한 센터 엘빈 존슨(Ervin Johnson)이라는 선수가 있다. 스펠링이 Ervin으로 매직과 약간 다르다. 엘빈 존슨은 시애틀 슈퍼소닉스, 덴버 너기츠, 밀워키 벅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등에서 활동한 평범한 몸빵형 센터로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커리어를 마감했다.][* 흥미롭게도 매직은 자신과 래리 버드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에서 어빈 존슨과 매직 존슨을 다른 자아로 설명한다. 어빈 존슨은 인간미를 가진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의 자신이고, 매직 존슨은 승부욕에 넘치는 농구 선수라고. 래리 버드 역시 동조하며 자신은 매직보다는 어빈이 좋다고 받아쳤다.] 결국 매직 존슨은 이렇게 다재다능한 실력을 바탕으로 에버렛 고등학교를 전국 우승으로 이끌게 되며, 고향 근처에서 살고 싶었던 그는 대학을 미시간 주립대로 선택하여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